오래된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루 리드의 'Perfect Day', 빗자루가 바닥을 쓰는 사각거리는 소리, 그리고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Komorebi).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화려한 CG나 자극적인 사건 하나 없이, 도쿄의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중년 남성 히라야마(야쿠쇼 코지 분)의 반복되는 일상을 담담하게 비춥니다.
누군가는 그의 삶을 보며 "지루하다"거나 "비루하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스크린 속 히라야마의 눈빛은 그 어떤 성공한 사업가보다도 맑고 깊습니다. 2026년, 성취와 속도, 그리고 끊임없는 연결을 강요받는 피로한 사회 속에서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울림은 여전히 묵직합니다. 그는 왜 더 가지려 하지 않을까요? 그는 왜 혼자일까요? 그리고 왜 행복해 보일까요?
오늘 이 글에서는 히라야마의 단조로운 일상 뒤에 숨겨진 단단한 심리적 기제를 '의식이 된 루틴', '자발적 고독', '마음챙김'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보려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완벽한 하루'의 비밀이 그 낡은 청소 도구함 속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반복의 미학: 불안을 잠재우는 '나만의 성벽' 쌓기
영화의 줄거리는 한 줄로 요약될 만큼 단순합니다. 히라야마는 매일 새벽 빗자루 소리에 눈을 뜨고, 자판기 캔커피를 마시며, 올드 팝을 듣고 출근해 화장실을 닦습니다. 일이 끝나면 목욕탕에 가고, 단골 식당에서 한 잔의 술을 마신 뒤 책을 읽다 잠이 듭니다. 마치 정교하게 맞춰진 시계태엽 같은 이 반복. 영화는 이를 권태가 아닌, 일종의 '성스러운 의식'처럼 묘사합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이러한 반복은 인간에게 강력한 통제감과 예측 가능성을 선물합니다. 현대인이 겪는 불안의 대부분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에서 기인합니다. 하지만 히라야마는 자신의 하루를 철저히 루틴화함으로써 불확실성을 제거합니다. 그에게 청소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쌓아 올린 견고한 성벽과도 같습니다.
이것은 현실 도피와는 다릅니다. 그는 세상과 단절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들어오는 자극의 양을 스스로 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 조절(Self-regulation)' 능력이 매우 높은 상태로 봅니다. 그는 외부의 소음이나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자신이 정한 규칙 안에서 평온을 찾습니다. 매일 아침 하늘을 올려다보며 짓는 그의 미소는, 반복되는 일상이 그를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그를 자유롭게 하는 날개임을 증명합니다. 히라야마에게 루틴은 지루함이 아니라,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가장 적극적인 생존 방식인 셈입니다.
자발적 고독: 외로움이 아닌 '온전함'을 선택하다
히라야마의 삶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키워드는 '혼자'입니다. 그는 동료의 수다에 옅은 미소로만 답하고, 가족과도 떨어져 지내며, 과거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합니다. 겉보기엔 쓸쓸한 독거 중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영화는 그의 고독을 비극적인 결핍으로 그려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고독 안에서 피어나는 사색과 깊이를 보여줍니다.
심리학에서는 고독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타인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고통받는 '고립'과, 스스로 혼자이기를 선택하여 내면을 충전하는 '고독'입니다. 히라야마의 삶은 명백히 후자, 즉 '자발적 고독'에 해당합니다. 그는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관계의 소모를 줄이고 그 에너지를 자신과 사물(나무, 빛, 음악)과의 교감에 쏟습니다.
그림자 밟기 놀이를 하던 장면에서 "그림자가 겹치면 더 어두워지나?"라는 질문은 의미심장합니다. 그는 타인과 섞이지 않음으로써 자신만의 고유한 명도를 유지합니다. 외로움을 억지로 없애려 하거나 타인으로 빈칸을 채우려 하지 않고, 그저 고요히 존재하는 상태. 이러한 태도는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성숙한 자아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퍼펙트 데이즈>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진정한 고독은 슬픈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가장 깊이 만나는 풍요로운 시간이라고요. 그는 혼자여서 외로운 게 아니라, 혼자여서 온전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코모레비'를 발견하는 마음챙김의 태도
히라야마는 부자가 되길 원하지도, 더 높은 지위에 오르길 원하지도 않습니다. 조카가 찾아와 "엄마가 찾는다"고 해도 그는 지금의 삶을 바꾸지 않습니다. 이것은 욕망이 메마른 상태가 아니라, '충분함'을 아는 상태입니다. 심리학적으로 끊임없는 비교와 미래에 대한 과도한 목표 추구는 우리를 '쾌락의 쳇바퀴'에 가두어 영원히 불만족스럽게 만듭니다. 하지만 히라야마는 그 쳇바퀴에서 기꺼이 내려왔습니다.
영화 속 대사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이다"는 그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이자, 심리학에서 말하는 '마음챙김'의 정수입니다. 그는 과거를 후회하느라 현재를 놓치지 않고,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지금의 햇살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매일 점심시간,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코모레비)을 필름 카메라에 담는 그의 행위는 찰나의 순간을 영원처럼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영화의 엔딩, 붉게 물든 노을 속에서 운전대를 잡은 야쿠쇼 코지의 롱테이크 씬은 압권입니다. 웃는 듯 우는 듯,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그의 표정은 삶의 모든 희로애락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은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얼굴이었습니다. 그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함으로써 행복해지려 하지 않고, 이미 주어진 것을 온전히 감각함으로써 행복을 '발견'합니다. <퍼펙트 데이즈>가 보여준 심리적 태도는 명확합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며, 미래의 성취가 아니라 현재의 향유 속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치며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영화가 아닙니다. 마음속 시끄러운 소음이 잠잠해지고, 비로소 내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기적 같은 영화입니다. 히라야마의 낡은 아파트와 공중화장실은, 화려한 고층 빌딩에 사는 현대인들의 공허한 마음보다 훨씬 더 꽉 차 있었습니다.
그의 삶을 '궁상맞다'고 느끼셨나요, 아니면 '부럽다'고 느끼셨나요? 만약 부러움을 느끼셨다면, 아마도 당신의 마음이 지금 쉼표를 원하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하루,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두고 히라야마처럼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세요. 그리고 나뭇잎 사이로 흔들리는 빛을 멍하니 바라보세요. 어쩌면 그 짧은 순간이 당신의 하루를 '퍼펙트'하게 만들어줄지도 모릅니다.
영화를 다시 감상하실 때는, 왜 그의 삶이 단조로워 보였는지가 아니라, 왜 그의 삶은 흔들리지 않는지를 바라보세요. 그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심리적 백신일 테니까요.